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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는 왜 상대평가의 천국이 됐을까?

CBS노컷뉴스 이기범 기자 입력 2017.06.11. 07:03

 

## "한때 교사로 근무했던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1등을 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등수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그 여학생은 다른 아이들 방의 불이 모두 꺼져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죠. 그게 새벽 4시였습니다."(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장)

## "객관식 시험에서 92점 받은 학생이 91점 받은 학생보다 정말 우수할까요? 대학입시에서 수시전형이 도입된 것은 '그렇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죠."(서울 소재 사립대학 입학처 관계자)

## 'GE,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 골드만삭스, 갭, 액센츄어 등 글로벌 기업들의 상대평가 폐지가 확산되는 추세다. 포춘지에 따르면 미국 기업 중 상대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 비중은 1990년대 50% 수준에서 2011년 14%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1980년대 고도성장기에 기업들은 '경쟁과 차별화'에 초점을 두어 상대평가를 주된 방식으로 삼았지만 2000년대 이후 협력,창의,자율 등이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포스코경영연구원 이슈리포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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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최근 고교내신과 수능 평가방식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현행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절대평가로 전환하느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의 문제는 평가방식의 변경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교학점제, 특목고 및 자립형사립고(자사고) 체제, 대학입시 제도, 사교육 시장 등 교육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변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근본 문제'다.

상대평가 방식은 학업성과를 다른 학생과 비교해 평가하고 그 위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며 절대평가는 일정 기준을 중심으로 개별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현재 고교 내신은 A~E까지 5단계 성취도(절대평가)와 석차 9등급제의 상대평가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입에서는 상대평가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수능 역시 올해 처음 영어와 한국사가 절대평가로 전환되지만 나머지 과목은 석차 9등급제의 상대평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상위 4%까지는 1등급, 4%이하 11%까지는 2등급 등의 방식으로 등급이 부여된다. 내신이건 수능이건 상대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현재 상대평가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1995년 이후 학교현장에 절대평가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에 따라 2000학년도 대입에서부터 고교 내신 절대평가 방식이 채택됐다. 내신 절대평가 반영은 2004년 고교 입학생들에까지 적용됐다.

하지만 내신 부풀리기 등의 논란이 일자 2005년 고교 입학생부터는 대입에서 상대평가가 적용됐다.

그러다 다시 2011년 교육부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2014년 고교 1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를 도입해 2017학년도 대입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히 늘어난 특목고,자사고에 특혜를 주는 정책이라는 반발이 강하게 일자 2018학년도로 도입을 유예하고 대입 적용도 2021학년도로 연기했다.

이처럼 상대평가 와중에도 절대평가 방식을 끊임없이 도입하려던 이유는 상대평가 방식의 한계점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에서처럼 상대평가 제도는 학생들간 '무한경쟁'을 조장하고 '교육적 타당성'도 부족한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상대평가 '신화'의 이면"

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똑같은 시험을 한날 한시에 치러 동일한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석차를 부여하는 상대평가 방식이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효율적이고 변별력 있는 제도로 여겨져 왔다. 이 믿음은 거의 '신화'에 가깝다.

하지만 상대평가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교육적인 타당성이 부족하다. 상대평가로는 학생간의 비교우열만 알 수 있을 뿐 해당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얻을 수 없다. 특히 지역별, 학교별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평가의 왜곡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지은림 교수는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1등급을 받아도 알 수 없다"며 "심지어 학습내용을 숙지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전체 학생의 성적이 나쁘면 운좋게 1등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왜곡현상 때문에 상대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과연 교육적으로 뛰어난 학생인지 확신할 수 없다. A 지역(학교)에서 1등급 받은 학생이 B 지역에서 2등급을 받은 학생보다 우수한지, 92점을 받은 학생은 91점 학생보다 뛰어난지 자신할 수 없다. 

(자료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이미지 크게 보기

(자료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상대평가의 또다른 문제점은 '무한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성취도를 달성했더라도 경쟁자들보다 더 좋은 등급과 석차를 받기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이는 사교육을 불러온다. 똑같이 받는 공교육으로는 남들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사교육을 받게 되고 잠잘 시간도 없이, 휴일도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 수 밖에 없다.

학생 한명 한명을 한줄로 세워 순위를 매겨야 하는 상대평가 제도는 객관성과 단순명확성이 생명이다. 동점자가 다수 발생하거나 등급 배분 비율이 어긋나면 평가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평가 제도는 객관식, 선다형 문제 출제와 조합을 이룬다. '창의융합형 인재'를 필요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객관식 문제 풀이 능력자'는 맞지 않다는게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한 변별력을 요구하다 보니 필요 이상의 어려운 문제나 교육과정 밖의 문제를 출제하기도 한다.

상대평가는 선택과목을 확대하려는 '2015 개정교육과정'과도 맞지 않다. 12명 이하의 학생이 선택한 과목은 상대평가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결국 개별 학생의 적성과 특기에 맞게 선택과목을 확대하려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절대평가 제도를 도입할 수 밖에 없다. 2015교육과정은 당장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된다.

◇ 절대평가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평가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성적 부풀리기 등의 온정주의적 평가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5.31 교육개혁에 따라 도입됐던 절대평가 제도가 2004년도 고교 1학년생까지만 적용되고 중단됐던 이유도 성적 부풀리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장은 'Z'점수를 한시적 대책으로 제안하고 있다. Z점수는 원점수와 평균점수의 차이를 표준편차로 나눈 값으로, 성적 부풀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성적을 부풀리기 위해 시험을 쉽게 내면 평균점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Z점수는 오히려 하락한다. Z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분모에 해당하는 표준편차를 줄여야 하는데, 이는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면 된다. 안 소장은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을 끌어올려 Z점수를 높이는 것은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며 "평균점수도 높이고 표준편차도 줄이면 Z점수가 급격히 높아지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등 일부 대학들이 신입생 선발에 Z점수를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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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대학에서는 절대평가로 내신이나 수능성적을 산출할 경우 변별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경인지역대학입학처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 경희대 입학처장은 "절대평가로 치러지는 수능 영어 과목의 경우 1등급 비율이 크게 늘면서 변별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럴 경우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해야 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변별력이 약화되면 면접을 본다든가 학생부와 연계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또한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력저하 현상도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절대평가 도입을 주장해온 지은림 경희대 교육대학원 교수 연구 결과 현행 9등급 상대평가를 5등급 성취평가(절대평가)제도로 전환할 경우 변별력이 일부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의 실제 입학전형 사례를 상대평가로 사정할 경우 합격과 불합격이 구분됐지만 절대평가로 사정하면 같은 등급을 받아 합격,불합격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들은 절대평가가 도입되는 전형의 비중은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능에서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정시 수능전형의 비중을 낮추고 내신이 절대평가가 되면 학생부교과전형의 비중을 낮추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경희대 김현 입학처장은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이 통합될 수 있다"며 "'패자부활전'과 같은 정시가 수시와 통합되면 학생들이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가 방식이 변하면 대입 제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대학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언제까지 대학의 변별력 주장에 고교 교육이 종속돼야 하느냐"며 "변별력을 앞세워 대학이 우수한 학생만 뽑으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교장은 이어 "(절대평가가 도입돼도) 대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별해 선발할 수 있다"며 "과거에는 수능 성적과 교과 내신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학생부종합전형이 생기고 정성평가 노하우도 축적돼 학생들의 수월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절대평가가 도입돼도 현재는 학생부 등을 통해 변별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 해당 학생이 대학전공과 관련된 과목을, 어떤 수준으로, 얼마나 다양하게 이수했는지 파악이 되는만큼 절대평가 변별력 약화 우려는 많이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상대평가 제도에서는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기 어렵다. 상대평가 방식에서는 13명 이하 소인수 과목을 개설하기 어려운데다 상대평가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적성보다는 많은 사람이 듣는 과목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절대평가의 변별력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고교 학점제는 절대평가 체제에서 그 취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절대평가-고교 학점제-대입 변별력 보완'이 서로 얽혀 있는 셈이다.

교육시민단체들도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고만 하지 학생을 뽑아놓고 우수하게 교육시키려는 노력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특목고와 자사고 등이 유리해지면서 특목고,자사고 지원 열풍이 불고, 이는 일반고 황폐화와 사교육 조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일반고인 여의도고등학교 강요식 교장은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내신에서 절대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은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된 서울미림여고 주석훈 교장도 "절대평가를 도입하려면 특목고,자사고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며 "문제해결 노력없이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특목고,자사고 열풍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고, 영재고를 제외한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결국 절대평가 도입을 위해서라도 특목고와 자사고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는 셈이다.

사교육업계에서도 절대평가 도입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는 맞지만 변별력 약화 문제, 내신 부풀리기 문제, 특목고 문제 등을 선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절대평가는 학생의 성취도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도구를 이용한다. 객관식 지필고사 외에도 수시평가나 형성평가를 활용해 다면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평가유형은 객관식 지필고사 유형에 최적화돼 있는 현재의 사교육업계가 따라 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 

◇ 고심하는 교육부 "점진적으로…"

이처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오는 7월까지 수능 제도 개편안과 절대평가 도입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교육부는 조심스런 모습이다. 당초 지난달말부터 공청회 등 여론수렴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교육부장관까지 공석이어서 좀처럼 정책방향을 잡지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다.

절대평가를 도입한다면 공통과목(국어,수학,통합과학,통합사회)에만 적용할지, 아니면 선택과목에까지 도입할지, 그리고 수능과 내신 모두에 절대평가를 도입할지, 아니면 한가지에만 도입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변별력 문제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요구,교육적 측면 등을 두루 따져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절대평가 도입 여파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 이기범 기자] hop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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