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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 대통령의 '엉큼한 인사'에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입력 2017.06.04. 15:16 수정 2017.06.04. 16:46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45

정가 공식 깨는 '문재인표' 파격 인사
측근 배제, 통합 발탁, 여성 발탁 3원칙으로
지금까지는 파격과 안정, 개혁과 통합 안배
"괜찮네"에서 시간 지날수록 "놀랍다" 평가
'재수 인생'과 청와대 경험이 큰 도움된 듯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5월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 둘째부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비서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꿰뚫은 명제입니다. 정작 자신은 인사에서 실패하면서 ‘인사는 망사(亡事)’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말입니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와 용인술에 대한 품평이 한창입니다. 대부분 “예상보다 훨씬 잘한다”는 평가입니다. 선거 때 ‘준비된 대통령’이라거나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 구호를 외치고 다닌 사람들조차 “솔직히 말하면 선거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펼치는 인사를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서훈 국정원장까지는 “그런가보다”라거나 “괜찮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장하성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정의용 안보실장,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 주요 포스트의 명단이 차례차례 드러나면서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이들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나”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비주류였던 한 국회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를 이렇게 할 줄 미리 알았다면 내가 비주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 대표나 후보 시절에는 전혀 보여주지 못하던 파격적이고 통 큰 면모를 지금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파격이라는 것일까요?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일까요?

그랬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에는 정치와 권력의 속성에 비추어보면 놀라운 몇 가지 포인트가 숨어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내부 사정에 밝은 의원들은 세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째, ‘측근 배제’입니다.

대선이 한창이던 시절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한 측근들의 지분이 얼마나 될까 따져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 50%, 노영민 전 의원 30%,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 20%’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기여가 매우 컸다는 것입니다.

노영민 전 의원은 2012년 대선캠프에서 문재인 후보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조직을 총괄하며 수많은 단체와 사람들의 문재인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대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자리를 놓고 임종석 전 의원과 경합했지만 밀려났습니다. 측근 배제 원칙이 작동한 것입니다. 노영민 전 의원은 중국 대사로 나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본래 노무현 전 대통령 사람입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로 끌어냈고 늘 곁을 지켰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비서실 부실장이라는 직함으로 온갖 궂은일을 다 맡아서 처리했습니다. 양정철 지분 50% 설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분석입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총무비서관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갑자기 ‘퇴장’을 선언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대선에서 공을 세웠지만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문재인 대통령 곁을 떠난 사람으로는 최재성 전 의원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도 있습니다.

이들이 문재인 대통령 곁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요? 양정철 전 비서관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가운데 해답이 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재수를 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전현직 관료, 정치인들이 2012년과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을 도왔습니다. 정권교체를 위한 염원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정권을 잡으면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정가의 도의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한 측근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다. 김대중-노무현 10년에 뒤이은 이명박-박근혜 10년은 우리에게 기근이었다. 밀려드는 인사 민원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노영민 전 의원은 조직을, 양정철 전 비서관, 최재성 전 의원은 인재영입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1기 문재인 청와대 및 내각에서 배제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노영민 양정철도 자리가 없는데 당신 자리가 어디 있겠느냐. 선거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새 정부에 기용하지는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측근들을 배제한 것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에서 일본식 ‘오야붕-꼬붕’ 관계는 모든 계파와 인맥의 기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이런 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한겨레> 자료사진

둘째, ‘통합 발탁’입니다.

통합 발탁은 측근 배제와 쌍을 이룰 수밖에 없는 원칙입니다. 측근들을 배제한 이유가 통합 발탁을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통합 발탁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선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발탁한 것을 보고 학계에서는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삼고초려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삼고초려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장하성 교수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후보의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며칠 뒤 안철수 당시 후보의 영입 제의를 받고 안철수 쪽을 선택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장하성 교수를 다시 영입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장하성 교수는 거절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종인 전 대표를 영입한 것에 대해 “어떻게 박근혜 정부 탄생에 기여한 인물을 비대위원장에 앉힐 수 있냐”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장하성 교수는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각인되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돼서 장하성 교수에게 정책실장을 맡아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발탁된 김부겸 의원은 본래 손학규 전 대표와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의 개헌 요구 서명에 참여했다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문자 폭탄’을 맞고 전화번호를 바꾼 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대선 전 김부겸 의원이 대구의 유권자에게 매우 심하게 욕먹는 장면을 문재인 당시 후보가 보고 김부겸 의원을 위로하면서 관계가 개선됐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공식 유세 첫 지역으로 대구를 선택한 것도 김부겸 의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김영춘 의원도 2012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했지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던 ‘부산파’와 사이가 좋지 않아 고전 끝에 낙선한 일이 있습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며 관계는 개선됐지만, 이번 대선 뒤 김영춘 의원은 자신이 장관직을 맡게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습니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김현미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하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지난해 8·27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문재인 세력과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친문세력 ‘싹쓸이’에 대해 김현미 의원이 ‘소탐대실’이라고 글을 올렸는데, 친문재인 성향의 권리당원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고 글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김현미 의원도 이번 대선이 끝난 뒤 입각 가능성을 묻는 지인들에게 “그럴 리가 없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회창-이명박-박근혜 등 대통령을 했거나 유력 후보였던 사람들의 특징은 ‘보스’를 배신하는 ‘부하’에 대해 가혹할 정도의 처절한 응징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벌백계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도전과 배신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게 기존 정치인들의 공식이었고 문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뒤통수를 치거나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사람, 정치적으로 자신과 맞섰던 사람들을 청와대 핵심 참모나 장관 후보자로 과감히 발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처럼 ‘엉큼한’ 면모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표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광폭 행보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아직은 미스터리입니다.

셋째, ‘여성 발탁’입니다.

우리나라 행정부는 아직도 남성 중심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여성 장관들을 많이 발탁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후퇴했습니다. 양성평등은 민주개혁세력의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정치에서 양성평등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60대 중년 남성입니다. 더구나 마초 문화가 강한 함경도 핏줄을 타고났고, 부산에서 자랐습니다. 양성평등에 대해 체질적 한계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피우진 보훈처장, 강경화 외교통상부장관 후보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거나 지명했습니다. 그 자리에 여성으로 처음 발탁된 사람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참여정부 조각을 하면서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환경부 장관이었던 김명자 장관을 건설교통부 장관에 발탁하려다가 고건 국무총리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쉬웠다고 쓴 일이 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됐으니 여성 장관 발탁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여성 장관 30%를 공약했습니다. 이 공약을 지키려면 현재 17명을 기준으로 모두 5~6명의 여성 장관을 임명해야 합니다. 앞으로 쏟아져 나올 각 부 장관 후보자 명단에 몇 사람의 여성이 더 포함될지 궁금합니다.

남은 인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금까지 인사는 합격선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파격과 안정, 개혁과 통합을 적절히 안배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를 잘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로서의 경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 측근은 오래전에 “문재인 대표는 공직 생활을 청와대에서 했고 거기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국회와 정당은 잘 모르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를 바라보며 그 말이 꽤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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