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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을 때리면 오른손으로 공격하라"..이낙연 '사이다 화법'

세종=양영권 기자 입력 2017.09.15. 04:14 수정 2017.09.15. 07:26

 

대변인만 4번 지낸 '내공'.. 해학과 풍자 섞인 반격, 솔직함과 디테일, 때로는 애국심에 호소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이미지 크게 보기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대정부질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스타가 탄생했다. 아니 대중들이 한 정치인의 진면목을 새삼 발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얘기다.

국회의원들의 홈그라운드인 국회에서 국회의원은 '갑'이고 정부 공무원은 '을'이다. 따라서 정부 공무원이 조명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총리는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여유롭고 능수능란하게 요리해 화제가 됐다. 이 총리의 발언을 모은 '사이다 답변', '우문현답'이라는 게시물이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돌기도 했다.

◇기자에서 정치인로 변신, 4선 국회의원에 도지사 경력까지

이 총리는 정치부 기자를 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2000년 이래 전남 영광군이 속한 지역구에서만 내리 4선을 하고 2014년에는 전남지사에 당선된, 만만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정당, 대선 캠프 등의 대변인을 5번 역임할 정도로 내공을 갖췄다. 그를 주변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은 '말발'로는 당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이 총리가 발언 자료를 준비하는 보좌진에게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누구한테 왼손을 맞으면 그 왼손만 이리저리 들여다 보는데, 그럴 게 아니라 오른손으로 맞받아 쳐라."

껄끄러운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한다면 질문자의 의도에 말려 들기 십상이다. 유도신문에 걸려들 수도 있다. 역공이 최선의 대응이다.

이번 대정부질문 과정에서는 이 총리의 화법이 잘 드러났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얻은 게 뭔가. 핵과 미사일인가"라는 질문하자 이 총리는 "지난 9년간 햇볕정책과 균형자론을 폐기한 정부가 있었다. 그걸 건너뛰고 이런 질문을 받는 게 뜻밖이다"라고 말해 전 정권에서 여당이었던 김 의원을 궁지에 몰았다.

자칫 반격으로 상대의 기분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해학과 풍자를 동원해 웃음을 유발한다.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 1인제"라고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공격하자 이 총리는 “조금 전에 삼권분립을 체험하지 않았나”라고 반박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서도 황 의원을 무장해제시켰다.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기보다는 애국심과 대의명분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김성태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하면서 '한국이 대북대화를 구걸하는 거지같다'고 말했다는 기사도 나왔다"고 하자 이 총리는 "김 의원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백악관은 한국정부가 미국산 첨단무기를 대량구매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왜 이 사실을 숨기느냐"고 하자 "박 의원이 한국 청와대보다 미국 백악관을 더 신뢰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대답한 것도 마찬가지 화법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 총리나 미국 대통령보다 한국 대통령을 더 신뢰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높기 때문에 이 말은 통한다. 만약 박근혜 정부 때라면 그런 말이 설득력이 있었을까.

◇ 질문 전제 무너뜨리고 때로는 상황에 맞는 '궤변'도

질문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도 자주 쓰는 화법이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근에 MBC KBS가 불공정 보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묻자 "꽤 오래 전부터 (MBC, KBS를) 잘 안 본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불공정 보도 여부 판단'의 전제가 되는 '방송 시청'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 대답 하나에 '방송 장악' 프레임을 씌우려던 박 의원의 의도는 박살났다.

이 총리는 그러면서도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뒤집으면 'MBC, KBS는 덜 공정하다'는 얘기가 된다. 논란은 피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언중유골'의 모범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말만 하는 게 아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을 비롯한 정부 원전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는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신규원전 건설중단과 설계수명 연장금지를 공약했다"는 말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말 자체만 보자면 궤변이다. 논리학 이론을 들 필요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했고, 2위와 무려 531만 표 차이로 당선됐다. 하지만 아무도 대운하 사업이 국민들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흥분하면 진다'는 싸움의 법칙을 잘 안다.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낮은 톤을 유지한다. 태도는 여유롭다. 야당 의원들은 잔뜩 벼르다가 제풀에 꺾이기 일쑤다.

하지만 이 모든 화술을 압도하는 것은 솔직함과 디테일이다. 헌법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나와 있다. 나라 살림에 관한 모든 것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알아야 할 것도 많다. 넓고 깊게 알아야 한다.

북핵 사태부터 원전 이슈, 예산안까지 다양한 분야의 질문에서 보인 이 총리의 상황 파악 능력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국제적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할 때는 앞서 김정은을 만났던 후지모토 겐지, 데니스 로드맨 등을 '깨알같이' 언급했다. 지난해 3월 공개된 북한의 핵폭탄 직경이 얼마냐는 물음에는 바로 "작년 3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하되 모르는 부분도 인정하는 것은 신뢰감을 높인다.

세종=양영권 기자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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