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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는 어떻게 사법부를 지배했나

Knight 2018.06.19 12:47 조회 수 : 1

양승태는 어떻게 사법부를 지배했나

입력 2018.06.19. 11:59

 

[한겨레21] 사법부 ‘하나회’라 일컫는 민사판례연구회…
재판 거래 의혹 양승태와 ‘리틀 양승태’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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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27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 참석해 새내기 판사에게 법복을 입혀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는 양승태가 미운 모양입니다.” 2015년 10월14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출입 신고’를 하러 간 기자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비서실 직원이 내온 차를 막 한 모금 마신 직후였다. 난데없는 지적에 미처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기자에게 그는 상고법원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상고허가제(대법원이 상고 허가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제도)를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대안은 상고법원밖에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만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해요.” 그의 ‘지적’은 당시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이던 <한겨레>의 논조를 겨냥한 것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인식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었다. 당시 상고법원에 비판적인 곳은 <한겨레>뿐만이 아니었다. 진보 성향의 다른 언론사들은 물론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에서도 비판 여론이 많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귀 기울여야 할 전문가 집단과 언론의 비판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폄하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이런 비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려는 욕심에서 추진한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오로지 ‘국민을 위해’ 추진하는 것이었다면 더 나은 제도를 찾아보자는 합리적 견해에 귀 기울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양승태가 이용훈에 밀린다’는 위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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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23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꽃다발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당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에 ‘올인’한 것은 ‘양승태 코트(법원)’의 업적을 남기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상고법원은 이미 참여정부 때인 이용훈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상고심 개혁 방안으로 한때 검토됐다가 폐기됐다. 상고심 사건 수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일본 등은 상고허가제나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양승태 코트가 상고법원 추진을 공식화한 2014년 6월은 양 전 대법원장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들 때였다. 당시 법조계에선 ‘양승태 대법원장의 업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임 이용훈 코트에서 공판중심주의(모든 소송 자료를 공판에 집중해 공판에서 얻은 심증만으로 재판을 하는 원칙)와 불구속 재판 원칙이 정착되고 전향적인 과거사 판결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것과 비교됐다.

‘양승태 코트가 이용훈 코트에 밀린다’는 평가는 양 전 대법원장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사법부 주류를 자처해온 보수 법관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반면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보수 법관들이 장악해온 대법관 구성에 균열을 낸 인물이었다. ‘대법원 구성 다양화’라는 이용훈 체제의 기조는 사법부 주류 법관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경력 관리에만 신경 쓰면 당연히 되는 줄 알았던 대법관 자리가 그만큼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수 고위 법관들은 ‘독수리 5형제’라 불린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대법원에 입성했을 때 동반 사퇴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런 마당에 양승태 코트가 이용훈 코트에 밀리는 것은 사법부 주류 세력으로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이용훈 코트의 유산 해체에 전력을 다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법부 보수 세력의 아이콘으로서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 법관들의 존재감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업’이었던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인선부터 과거로 돌렸다. 이용훈 체제 이전과 마찬가지로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연수원 기수에 따라 차례로 대법관에 올랐다.

서울대·오십대·남성… ‘서오남’ 인사 부활

‘서오남’(서울대 출신·오십대·남성 판사)이라는 악명 높은 대법관 인사 방식이 다시 되풀이됐다. 여성인 박보영·김소영 대법관이 발탁됐지만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이들은 ‘선배’인 전수안·김영란 전 대법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약했다.

자연스레 대법원 판결도 과거로 돌아갔다. 다양성이 사라진 대법원을 평정한 것은 강력한 보수 이데올로기였다. 노동사건과 시국사건에서 기득권 세력과 보수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이 쏟아졌다. 특히 이용훈 코트의 업적으로 분류되는 과거사 판결을 교묘한 법리로 뒤집는 판결이 이어졌다. 유신정권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대표적이다.

2015년 3월 대법원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 무효로 선언됐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이긴 하지만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궤변에 가까운 논리였다.

이 판결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골칫거리를 말끔히 제거해줬다. 긴급조치는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정권의 폭압성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대법원 판결은 이를 고도의 통치 행위로 미화해 딸이 져야 했던 정치적 부담을 크게 덜어준 것이다. 최근 ‘사법부 블랙리스트’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대통령 면담용 자료)에는 이 판결을 비롯한 과거사 뒤집기 판결들이, 양승태 코트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온 증거로 제시됐다.

양승태 코트의 과거 회귀는 보수 성향 대법관들과 법원행정처의 ‘관료판사’들이 주도했다. 이들 판사는 사법부 주류 가운데서도 핵심으로 분류된다. 뛰어난 일처리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까지 갖춰 양 전 대법원장의 총애를 받았다. 특히 관료판사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대법원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위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판사들에 대한 사찰이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진 배경이다.

이들은 법원 내 특정 모임에서 재생산됐다. ‘사법부 하나회(전두환·노태우 등 육사 11기 주도로 결성된 군 내 사조직)’라는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가 이들의 산실이었다. 민판연은 민법의 대가로 꼽히는 곽윤직 전 서울대 교수가 1977년 제자인 판사들과 만든 학술연구모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폐쇄적인 운영 방식과 법원 내 요직 독점 논란으로 판사들의 성토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양승태들’의 산실, 민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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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5일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통상임금 관련 상고심 재판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회원 모집부터가 폐쇄적이었다. 서울 법대 출신에 법무관 경력이 있는 남성 판사들 가운데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 선발했다. 법무관 경력은 대학 재학 중에 사법고시에 패스했음을 의미했다. 그만큼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았다. 이런 회원 모집 방식에 법원 내 비판 여론이 들끓자 2010년부터 공개모집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주요 보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2015년 2월 민판연이 발간한 논문집 <민사판례연구> 37집을 보면 회원 230명 가운데 현직 판사는 110명이었다. 반면 당시 대법관 13명 중에 민판연 회원은 민일영, 김용덕, 김소영, 박병대 대법관 4명이었다. 판사 회원이 전체 법관(3천 명)의 4%에 불과한 조직이 현직 대법관 자리의 30%를 장악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초기 멤버로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 대법원장 취임 전 탈퇴했다.

특히 대법관 승진 코스인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조실장, 사법정책실장, 인사심의관 등 주요 보직은 이들의 독무대가 됐다. 역대 34명의 차장 가운데 6명이 민판연 출신이고, 법관 인사 실무를 전담하는 인사심의관은 극히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판연 회원이 맡아왔다.

민판연의 특징은 끈끈한 인맥이다. 1년에 한 차례씩 정기 부부 동반 모임 외에 각종 소규모 모임을 열어 개인적 친분을 쌓는다. 이런 친분은 자연스레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친다. 법원행정처 요직과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민판연 출신 판사가 많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고위 법관은 “행정처에서 일할 때 나는 감히 말도 못 건네는 고위 법관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민판연으로 얽힌 관계였다”고 말했다.

대법관 승진 코스, 민판연이 장악

인사에서 혜택을 받은 후배들은 자신을 이끌어준 선배에게 충성심으로 보답했다. 이런 ‘상명하복’ 문화는 독립성을 강조하는 판사 사회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보수 법관들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미덕으로 강조됐다. 2013년 1월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한 특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특강에서 19세기 말 미국이 쿠바 독립을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일 때, 쿠바의 반군 지도자에게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르완 중위의 일화를 소개했다. 르완 중위는 상부에서 반군 지도자의 소재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주지 않았음에도 불평은커녕 질문 하나도 없이 임무를 맡아 성공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르완 중위가 주목받는 것은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맡은 임무를 두려워하지 않고 능동적·창의적으로 임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며 “갈고닦은 역량으로 새로운 법조 역사를 만들어가기 바란다”고 예비 법관들을 격려했다.

그의 특강은 판사 사회에서 곧 입길에 올랐다. 르완 중위 사례는 ‘주어진 임무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말고 어떻게 하든 알아서 성공시켜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법관의 독립과 양심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판사 사회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일선 법원의 판사들은 대법원장의 특강 내용이 어리둥절했지만, 법원행정처의 민판연 출신 판사들은 ‘대선배’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최근 공개된 ‘사법부 블랙리스트’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은 윗선의 지시에 아무런 저항 없이 법관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버젓이 저질렀다.

이 가운데 앞날이 창창한 40대 초반의 소장 판사들이 저지른 짓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아무개 판사는 긴급조치 사건과 관련해 양승태 코트의 뒤집기 판결을 따르지 않고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선배 법관의 징계를 추진했다. 그는 선배 판사에 대해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의 가능성 존재. 법관들에게 판례의 구속력에 대한 경각심 고취. 한국형 선례 구속의 원칙 확립을 위한 사법정책연구원 연구(필요)”라고 평가하는 문건을 작성했다.

‘리틀 양승태’들의 추한 민낯

정아무개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에 법원행정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는 “중요 대응 논리를 사전에 오피니언 리더 법관들에게 주지시키고 판사들에게 충분히 전파하여 신중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함. 사전에 여론 조성 활동을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음→선거와 달리 ‘사전선거운동’의 부담이 없음”이라고 윗선에 보고했다.

박아무개 판사는 박근혜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성완종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사법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있는 사안들에 대하여 사건 처리 방향과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와의 ‘협상전략’을 보고했다.

지금은 법복을 벗어야 할 처지가 된 이들은 법원행정처 근무 당시에는 사법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로 간주됐다. 사법부 보수 세력의 맥을 이어갈 ‘리틀 양승태’로 선배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일선 법원의 판사들은 지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한 성역 없는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제2, 제3의 양승태를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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