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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나라가 연맹 이룬 가야..지방분권 의미 커"

이지안 기자 입력 2017.06.04. 11:15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토기가 다량 출토됐다. 사진은 김해 봉황동 유적 중 조사구역 일부. (문화재청 제공) 2016.11.23/뉴스1

금관가야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삼국시대 가야와 신라의 토기가 다량 출토됐다. 사진은 김해 봉황동 유적 중 조사구역 일부. (문화재청 제공) 2016.11.23/뉴스1

 

(부산·경남=뉴스1) 이지안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가야사 복원을 언급한 이후 삼국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가야사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가야는 6개 소국이 연맹을 이룬 국가인 만큼 현시대에 '지방분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따로 또 같이…연맹국가에서 찾는 지방분권의 의미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실재했던 고대 국가다.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고령가야(상주 함창), 대가야(고령), 성산가야(성주), 소가야(고성) 등 6개 소국이 연맹을 이룬 형태였다.

초기에는 금관가야가, 후기에는 대가야가 연맹을 이끄는 가운데 6가야는 각자의 지역에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중앙집권국가로 통합되지는 못했지만 연맹체제로도 국가는 600여년이 지속됐다. 

송원영 김해시청 문화재과 박물관운영팀장은 “흔히 가야를 6가야라 하는데 여기서 이제는 지방분권의 의미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삼국 중심 고대사는 불균형…가야 위상 재정립돼야

가야는 낙동강부터 섬진강, 금강 상류까지 세를 뻗치며 철기문명을 꽃피웠지만 주변 삼국과 비교하면 사람들의 ‘관심 밖’이던 것이 사실이다. 

이영식 인제대 교수(역사고고학)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영향으로 고대사라 하면 흔히 삼국시대를 가리키다 보니 가야와 같은 여타 왕국의 역사는 낄 여지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 고대사가 기록된) ‘일본서기’나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임나일본부론’에서 가야사가 언급되는데 우리 쪽에는 가야사에 대한 사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가야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자칫 임나일본부론에 빠질 수 있다며 가야사 복원 등을 피해 온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야가 600년이나 독립적인 정치 세력을 유지했고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영위했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건 우리 고대사 교육의 불균형이고 잘못”이라며 “이제는 그 위상이 재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열린 관광지로 선정된 고령군 대가야 역사테마공원 전경(경북도 제공) © News1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열린 관광지로 선정된 고령군 대가야 역사테마공원 전경(경북도 제공) © News1

 

◇ ‘가야사’ 관심 높은 지금, 각계 협력 절실

정부 차원에서 가야사 복원이 추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해시가 경남 일대의 가야 유적을 발굴하고, 특히 김해를 역사문화도시로 조성하자며 ‘가야사 2단계 복원사업’을 김대중 정부 때 시작했지만 예산 문제로 현재까지도 미완이다. 

이밖에 경남·경북도와 김해·함안·고령이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논의를 2011년 시작, 2015년 3월에는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우선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북도와 장수군이 ‘장수가야문화유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갖기도 했다. 

송원영 팀장은 “25년 뒤면 가야 건국 2000주년”이라며 “유적 보존이나 정비, 인프라 구축에 있어 25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 안남은 만큼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가야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지 않도록 정부, 관련 지자체들, 학계가 한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영식 교수는 “동북아재단처럼 가야사 연구활용의 중심이 되고 예산 집행도 쉽게 할 수 있는 센터나 재단을 정부가 특별법을 재정해 설립해야 한다”며 “가야 역사를 공유하는 각 지자체들도 정부의 예산 배분을 놓고 각개전투하기보다는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 역사 연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가야사를 연구할 후학 양성이 중요한데 지금은 평생에 걸쳐 연구할 사람이 거의 없다”며 “인력 양성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때”라고 덧붙였다.

j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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