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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6.10 민주화 항쟁

Knight 2017.06.11 08:11 조회 수 : 3

6·10 민주 항쟁

한자 -民主抗爭
이칭/별칭 6월 민주 항쟁,6월 항쟁,6월 민중 항쟁,6월 민주화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인천광역시 남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석

[상세정보]

[정의]

1987년 6월 10일부터 1987년 6월 29일까지 인천광역시 남구 전역에서 전개된 민주화 시위.
 

[개설]

1987년 6월 10일부터 1987년 6월 29일까지 계속된 6·10 민주 항쟁은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구호로 외치며 전개된 민주 항쟁으로,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소재 인하 대학교 학생 등 인천광역시 남구 시민과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인천광역시 남구 지역에서는 인하 대학교와 그 주변,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시민 회관 앞 등지에서 집회 및 시위가 계속되었다.
 

[역사적 배경]

1987년 1월 14일 서울 대학교 학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 군 범국민 추도식’과 시위가 계속되는 와중에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 담화를 통해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독재 타도’와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1987년 5월 18일 5·18 민주 항쟁 운동 7주년 추모 미사에서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을 당국이 은폐했다고 폭로하자 국민들의 분노가 높아져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1987년 5월 27일 민주 통일 민중 운동 연합과 통일 민주당이 주축이 되어 범 민주 세력을 결집해 결성한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출범하였다.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가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 범국민 대회’를 개최하며 6·10 민주 항쟁이 시작됐다.
 

[경과]

인천 지역의 6·10 민주 항쟁은 인하 대학교 학생 등과 인천 지역 사회 운동 연합, 가톨릭 노동 청년회, 인천 기독 청년 협의회 등의 단체 등이 모여 1987년 5월 결성한 ‘4·13 호헌 분쇄 및 민주 개헌을 위한 인천 지역 공동 대책 위원회’의 주도하에 시작되어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부평역 앞, 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 동인천역 앞 등지에서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인하 대학교 학생들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87년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 살인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 출정식을 인하 대학교 내 통일 광장에서 개최하며 6·10 민주 항쟁을 시작하였다. 출정식 후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독쟁이,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주안 사거리,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석바위를 거쳐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효성동 등지에서 집회 및 시위를 가졌다. 1987년 6월 14일, 기말 시험 거부와 호헌 철폐에 대한 비상 총회가 2천 5백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하 대학교 내 통일 광장에서 개최됐으며 인천광역시 중구 동인천동 동인천역까지 진출해 집회를 가졌다. 1987년 6월 15일에도 인하 대학교 내 대운동장에서 비상 총회를 개최하여 1만여 명의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가진 후 인하 대학교 정문과 후문 등지에서 시위를 전개하였고 일부 학생들은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시민 회관과 석바위 등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87년 6월 18일 개최된 ‘최루탄 추방을 위한 인천 대회’에는 1천여 명의 인하 대학교 학생들이 참가해 1987년 6월 19일까지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청천 시장 등지에서 시위를 전개하였으며, 이날 인하 대학교 학생 219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한편, 1987년 6월 17일에는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천주교 주안1동 성당에서 정의 평화 위원회가 주최한 시국 기도회가 열렸으며 행사 후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석바위까지 행진하며 자정까지 시위를 계속하였다.
 

[결과]

6·10 민주 항쟁을 통해 국민들이 전국적인 항쟁을 전개하자 1987년 6월 29일, 민주 정의당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자인 노태우 대표가 직선제 개헌을 통한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져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었으나 야당 후보들의 분열로 정권 교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의의와 평가]

6·10 민주 항쟁은 전두환 정부의 장기 집권 의도를, 범민주 세력이 결집해 전개한 시민 저항을 통해 저지함으로써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냈으며 이후 19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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