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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 사격, 조종사의 증언 ③ "코브라 헬기도 사격?..사라진 벌컨포 1천 발"

정성진 기자 입력 2017.09.19. 12:15 수정 2017.09.19. 13:25

20170919121507224gomd.jpg이미지 크게 보기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공격 헬기 가운데 하나는 AH-1J, 코브라 헬기입니다.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코브라 헬기는 '전차 잡는 공중의 독사'로 불릴 만큼 강력한 공격 헬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강력한 코브라 헬기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것입니다. 다행히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20mm 벌컨포로 무장한 상태였습니다. 20mm 벌컨포도 경장갑차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 무기입니다. 사람을 향해 쏜다면 그 결과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500MD와 휴이의 사격 가능성은 제기돼 왔지만, 코브라 헬기의 사격 가능성은 낮게 봤습니다. 광주 상공에서 작전하는 코브라 헬기가 찍힌 사진도 없는 데다 주로 사람보다는 장갑차, 전차 등을 상대하는 공격 헬기이다 보니 자연스레 배제된 면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설마 코브라까지 사격했겠어..'라는 생각도 깔려 있었겠죠.

하지만, 코브라 헬기도 사격을 했을 수도 있다는 정황들이 포착됐습니다. SBS 기획취재부가 5.18 헬기 사격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시 코브라 헬기 조종사를 만나 인터뷰하고, 당시 군 상황일지 등 자료를 분석해 다다른 결과입니다. 여전히 헬기 사격의 완전한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건, 당시 헬기 조종사들의 증언과 조작되지 않은 5.18 당시 헬기 작전일지뿐입니다.

● "코브라 헬기 두 대, 500발씩 무장한 상태였다"

1980년 5월 22일 14:30, 코브라 헬기 두 대가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코브라 헬기를 몰았던 조종사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당시 코브라 헬기 조종사는 무장 헬기를 몰고 작전에 투입한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무장 능력이 750발인데, 500발씩 싣고 다녔다"라고 말했습니다. 광주에 투입된 코브라 헬기가 두 대였으니, 500발씩 무장했다면 20mm 벌컨포 1,000발이 광주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말도 함께였습니다.

코브라 헬기의 무장에 대한 사실은 당시 헬기 부대 지휘관들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95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송진원 1항공여단장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은 '코브라 헬기가 20mm 벌컨포 500발씩 무장한 상태로 광주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역시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공통된 답변이었습니다.

● 80년 5월 23일, 항공대에 20mm 벌컨포 1,500발 지급

20170919121507509ayla.jpg이미지 크게 보기

하지만, 당시 군 기록을 살펴보면 '사격은 없었다'는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포착됩니다. 당시 광주 계엄군을 지휘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전교사의 '보급지원 현황'을 보면 전교사가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여단, 항공대 등 군부대에 지원한 보급품 내역이 기록돼 있습니다.

5월 23일 기록을 보면, '항공대 20mm 벌컨 1,500EA'라고 적혀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교사가 5월 23일 광주에 투입된 항공대에 20mm 벌컨포 1,500발을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광주에 투입된 헬기 가운데 20mm 벌컨포를 사용하는 헬기는 코브라 헬기뿐이었습니다. 1,500발 수령처가 코브라 헬기였다는 건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5월 22일. 각각 500발씩, 모두 1,000발로 무장한 채 투입된 코브라 헬기 두 대에 바로 다음 날인 5월 23일, 각각 750발씩, 모두 1,500발이 지원됐다는 것입니다. 사격은 절대 없었다는 헬기 부대에 추가로 탄이 지급된 것은 의아한 부분입니다. 먼저 가져왔던 1,000발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탄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 "추가 탄약 받은 사실 없다"

당시 코브라 헬기 조종사에게 이 사실을 묻자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1,500발을 받았는지, 얼마를 더 받았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무장수가 아니니까 실탄 유통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우리는 처음 가져온 1,000발만 싣고 다녔다"고 답했습니다.

95년 당시 검찰 조사에서도 역시 이 부분이 지적됐습니다. 검사는 헬기 부대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22일 가져온 1,000발을 모두 사용하고 23일 코브라 헬기 2대 분의 탄약을 추가로 받은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헬기 부대 지휘관들의 답은 '헬기 사격 사실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탄약을 다시 받은 사실이 없다. 전교사 사령부에서 예비용으로 받아 놓은 것일지 모르겠다' 였습니다. 특히, 코브라 헬기 부대를 이끌었던 이정부 중령은 '헬기 부대 용도가 아니라 지상에서 공중으로 사격하는 벌컨포의 탄일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 "1,500발 지급 기록은 있지만, 반납 기록은 없다"

1,500발의 탄약이 항공대로 지급된 기록은 있지만, 반납했다는 기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이 부분을 지적합니다. 군부대 특성상 지급 기록이 있었다면, 쓰고 남은 게 있다면 반납 기록도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반납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수만 5.18 유족회 전 회장은 "보급량이 있는데, 재고가 없고 반납 기록이 없다"면서, "광주에서 코브라 헬기가 20mm 벌컨포를 사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군 지휘관들 말대로 1,500발이 예비용이었다면 반납 기록이 공개돼야 할 것입니다.

● 헬기 부대 지휘관의 궁색한 변명

그렇다면, 이정부 중령의 말처럼 당시 지상에서 공중으로 쏘는 벌컨포의 탄이 지급됐을 수도 있었을까요? 당시 계엄군이 무장 헬기를 투입한 건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민군이 장갑차를 훔쳐 사용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어디에서도 헬기나 비행기를 운용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계엄군이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해서 공중을 요격할 무기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상에서 쓰는 20mm 벌컨포의 탄과 헬기에서 쓰는 20mm 벌컨포의 탄 일부가 서로 호환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대영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헬기용과 지상용 20mm 벌컨포 가운데 2개 이상의 탄이 서로 호환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상용을 받았다는 이정부 중령의 대답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코브라 부대에 내려진 두 차례 사격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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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기록을 살펴보면, 코브라 부대에 직접적으로 내려진 사격 명령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코브라 헬기가 도착한 당일인 22일입니다. 95년 검찰 조사 기록과 군 기록을 보면, 22일 코브라 헬기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당시 김순현 전교사 전투발전부장이 "광주 시내 상황이 엉망이니, 코브라 헬기로 광주천을 따라 위협사격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당시 김순현 부장의 이 같은 명령은, 황영시 육군 참모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두 번째 사격 요청은 24일이었습니다. 당시 최웅 11공수여단장이 "폭도들로부터 공격받고 있으니 금당산 쪽으로 헬기 사격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두 차례 사격 지시에 대해 당시 헬기 부대 지휘관들은 모두 사격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22일 사격이 있었다면, 당시 코브라 헬기가 가져왔던 1,000발 가운데 일부 탄을 소모했을 것이고, 이후 작전을 위해 23일 추가 탄이 지급됐을 수도 있습니다.

● 광주에서 발견된 20mm 벌컨포 탄피, 국과수 "80년 이전 제작된 것"

80년 이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발견된 20mm 벌컨포 탄피는 모두 5점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광주에서 20mm 벌컨포가 사용됐다는 정황입니다. 최근 국과수에선 탄피 5점에 대한 정밀 감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과수는 "5점 가운데 2점이 생산년도가 1977년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80년 이전 생산된 탄인 만큼 80년 광주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이 두 점의 탄피가 발견된 곳은 광주 월산마을로 알려졌습니다. 월산마을은 코브라 헬기 사격 명령이 내려졌던 광주천과 금당산의 가운데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거리상으로는 2km 남짓 떨어진 곳입니다.

국과수는 탄피 하나에서 M103이란 글귀도 적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김대영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M103이란 20mm 벌컨포 탄 가운데 하나로 연습용 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습용 탄이란 실제 사격 훈련을 할 때 쓰이는 것을 말합니다. 실사격 훈련 때 비싸고, 주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실탄을 쓰는 대신 연습용 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연습용 탄이라고 살상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김대영 연구위원은 "구리나 쇠가 아니라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졌을 뿐 실탄과 같다"면서 "사람에게 쏜다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당시 군이 실제 사람을 향해 쏘지는 않았더라도 연습용 탄을 이용해 위협사격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 전두환 회고록이 오히려 헬기 사격 진실 풀어줄까

만약, 가공할만한 살상력을 가진 코브라 헬기가 광주에서 사격을 했다면 당시 신군부의 논리는 모두 무너지게 됩니다.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사격을 했다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헬기 사격의 정황과 실마리만 있을 뿐 진실에 다가서기에는 부족합니다. 당시 헬기 조종사의 증언과 숨겨져 있는 군 기록이 공개돼야만 합니다.

최근 광주지검은 80년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 17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접촉에 나섰습니다. 전두환 씨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를 향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며 비난한 데 대해 고 조비오 신부의 유가족이 고소하면서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입니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 자위권의 일환이었다'고 변함없이 주장해온 전두환 씨 덕분에 80년 당시 광주 헬기 사격의 진실이 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성진 기자capta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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