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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의 인생사

문재인 대통령 2

Knight 2017.05.30 13:13 조회 수 : 2

문재인

 

문재인

 

문재인 19대 대통령 당선인이 9일 오후 서울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에 도착해 환호하는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17.5.10

문재인은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재인은 유효 투표의 41.1%인 1342만3800표를 얻어, 24% 득표에 그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785만2849표)를 크게 앞서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19대 대선은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문재인은 대통령직 인수위 과정 없이 10일 국회에서 약식 취임식을 갖고 대통령 업무를 곧바로 시작한다.

문재인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 세월호 리본을 두 개 붙이고 서울 광화문에서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정의로운 나라, 통합의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해주신 위대한 국민들의 위대한 승리”라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새로운 나라 꼭 만들겠다. 국민만 보고 바른 길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19대 대선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등이 출마, 완주해 다자구도로 치러졌다. 최종투표율 투표율은 77.2%(잠정치)로 1997년 15대 대선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체 선거인 4247만9710명 가운데 3280만8377명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성장기

문재인은 1953년 경남 거제의 피난민 가정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은 원래 함경남도 흥남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1950년 '흥남 철수' 때 고향을 떠나 거제 피난민 수용소로 내려왔다.

문재인은 거제 피난살이 시절 태어났으며 문재인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부산 영도로 옮겼다. 아버지 문용형은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일할 당시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으며 괴롭힘을 당해 거제에서는 장사로 생계를 꾸리려했으나 빚만 잔뜩 졌다고 한다. 일곱살 때 태풍 '사라'로 판잣집 지붕이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가난한 가정형편에도 부산의 명문인 경남 중·고등학교를 나오며 좋은 성적을 거뒀으나, 술 담배를 하다 유기정학을 맞기도 했다. 문재인은 "중·고교때 내 별명은 '문제아'였다"며 "빈부격차가 확연한 경남중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처음 세상의 불공평함과 위화감을 피부로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1년 재수 후 경희대 법학과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75년 전국적으로 유신 반대투쟁이 본격화되자, 문재인은 총학생회장 대행으로 유신독재 반대 투쟁을 이끌고, 유신독재 화형식을 주도하다 경찰에 구속·수감됐다. 재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받았으나 징역 10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났다.

석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영 영장이 나와 강제징집됐다. 군에서 특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되어 폭파병으로 훈련을 받고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과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는 등 특A급 사병이었다.

1978년 제대했으나 학교에서는 제적된 상태였다. 제대 직후 아버지가 5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문재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에 49재를 치르자마자 전남 해남의 대흥사로 들어가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초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 당한 후 '서울의 봄'이 오자 1980년 3월 학교에 복학했다.

문재인은 복학생 대표로서 학원민주화 투쟁에 나섰다. 투쟁 중 2차 시험을 봤고,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발표한 5월 17일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된 상태에서 유치장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후 수사가 유야무야되며 석방됐다.

사법연수원에서는 고 조영래 변호사와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전 대법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박병대 대법관 등을 만났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보였지만 지망했던 판사가 될 수 없었다. 운동권, 시위 경력 때문이었다.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대학 시절부터 만난 김정숙 씨와 결혼했다. 변호사가 되기로 한 문재인은 로펌의 제안도 있었으나 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갔다.

인권변호사

1982년 문재인은 부산에서 연수원 동기 박정규의 소개로 당시 부산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부산 서구 부민동 법원 후문 근처에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둘은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노무현은 이미 부림사건과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변론을 맡은 바 있었고, 문재인이 합류한 이후 이들은 부산은 물론 울산·창원·거제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인권변호사가 됐다. 문재인과 노무현은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설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재야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87년에는 6월 항쟁의 주역이 된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노무현은 상임집행위원장을, 문재인은 상임집행위원을 맡기도 했다. 문재인은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이었지만 그 운동의 중심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자긍심을 드러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노무현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문재인은 부산에 남아 혼자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1995년 여러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했다. 문재인은 직접 '노동자를 위한 연대' 대표를 맡고 부산노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노동문제를 상담하고 노조설립 활동을 지원하는데 집중했다.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문재인은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기용됐다. <운명>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제안했을 때 문재인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노무현은 "당신들이 나를 정치로 나가게 했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라고 했고,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가지 조건을 걸고 허락했다고 한다.

문재인은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총선 출마 압력이 거세지자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상의 문제를 이유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나 네팔로 여행을 떠났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중 네팔 카트만두의 한 호텔에서 영자신문을 통해 노무현의 대통령 탄핵 소식을 알게 되어 즉시 귀국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는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를 맡아 실무적 역할과 언론 대응을 진행했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에 복귀한 직후 문재인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다시 민정수석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무현 정부 말까지 청와대에서 일했다. '왕수석'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엄격한 자기 절제로 특별한 문제 없이 청와대 보좌 업무를 마치고, 2008년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칩거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노무현의 서거 이후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국민에게 직접 발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국장을 이끄는 '상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장례실무를 도맡았다. 특히 장례식장을 찾은 당시 대통령 이명박에게 한 의원이 '사죄하라'고 항의하자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0년 재단법인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을 맡으며 정치권과 거리를 뒀으나 정치권에서는 줄곧 '역할론'이 제기됐다. 문재인은 노무현 서거 이후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다. 그는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표현했다.

첫번째 대선 출마

문재인은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하고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55%의 득표율을 얻어 새누리당의 손수조 후보(43.76%)를 제치고 당선됐다. 보수 정당이 항상 강세를 보여왔던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첫 번째 민주당 후보다.

2012년 6월 17일 문재인은 18대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민주통합당 국민경선에서 손학규·정세균·김두관 등을 꺾고 13번 모두 1등을 차지하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 이후 통합진보당 이정희, 진보정의당 심상정이 후보직을 사퇴하고 무소속으로 나섰던 안철수와도 어렵사리 후보 단일화를 이뤄 야권 단일후보로 18대 대선에 출마했다.

 

지지자들 손잡는 문재인

 

지지자들 손잡는 문재인

18대 대선을 하루 앞두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서울역 광장에서 연설을 마친뒤 시민과 지지자들의 손을 잡고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 문재인은 득표율 48.02%(득표수 1469만표)로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의 득표율이자 득표수를 얻었지만 51.6%(1577만3128표)를 확보한 박근혜에게 밀려 패배했다. 문재인은 2013년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펴내면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문재인은 2015년 2월 8일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나서 초선의 당대표가 됐다. 그러나 두달 만에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당내에서 리더십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이 통과시킨 '공천혁신안'에 반대한 안철수 등이 12월 이듬해 4.13 총선을 앞두고 대거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쪽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낸 김종인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세우고 표창원, 박주민, 양향자 등 색깔이 뚜렷한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선거 결과 수도권은 물론 부산·경남에서 11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며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두번째 대선 출마

박근혜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가 열렸다. 문재인은 충남지사 안희정, 성남시장 이재명, 고양시장 최성 등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다.

문재인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체 투표수 164만2640표 중 누적 득표율 57%(93만6419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누적 득표율 50%를 넘어 결선 투표로 가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했다. 2위는 누적 21.5%(35만3631표)를 얻은 안희정, 3위는 누적 21.2%(34만7647표)를 얻은 이재명, 4위는 0.3%(4943표)를 얻은 최성이 차지했다.

문재인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저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 지역 통합, 세대 통합,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국민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경제와 안보 무너진 두 기둥을 바로 세우겠다. 불공정, 부정 부패, 불평등을 확실히 청산하겠다. 연대와 협력으로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이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공약

일자리

문재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첫번째 공약으로 일자리 공약을 내세웠다. 문재인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일자리 81만개 창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관 협업체계 구축 등으로 4차 산업혁명 선도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이행 방안으로 제시했다.

정치개혁

문재인은 대통령 특권을 국민에게 반납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정부청사로 이전 △저도 반환 △ 대통령의 24시간 공개 △ '인사추천 실명제' 등 대통령 인사시스템 투명화 △대통령 직속 경호실 폐지,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위상 조정 등을 약속했다. 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및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통한 검찰 개혁과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는 국정원 개혁안을 내놨다.

안보

문재인은 △ 한미동맹 강화와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방산비리 근절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구축 등 자주 국방력 확보 △첨단 무기체계 도입으로 과학군·기술군 중심의 강한 군대 육성 등을 공약했다. 또 장병 급여를 최저임금의 30%, 40%, 50% 식으로 연차적으로 인상하고 모든 상해 장병에게 부상의 경중과 관계없이 민간병원 치료비를 전액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문재인은 2020년까지 향후 3년간 한시적으로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적용해 공공부문을 현행 3%에서 5%로 확대하고, 의무 고용제 성실 이행 기관·기업에 인센티브, 불이행 기업에 고용분담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 청년임대주택 30만호 공급, △부당 업무지시 제한 근거 마련, 정신적 학대 금지 등을 명시한 알바 존중법 도입 등도 약속했다.

여성

문재인은 △여성가족부 기능 강화,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출산휴가 등 비정규직 여성 차별 금지 · 블라인드 채용제 도입 등 여성 일자리 차별 해소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 확대 △'여성폭력기본법(가칭)' 제정 추진 등 젠더 폭력 방지 등을 약속했다.

노인

문재인은 현재 월 10~20만원 차등지급되는 기초연금을 차등없이 30만원 균등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노인 일자리 수를 현재의 2배 수준인 80만개로 확대하고, 월별 일자리 임금을 2020년까지 현 22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외에도 △국민연금·퇴직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보장 강화 △노년 건강 증진사업 확대 등을 약속했다.

육아

문재인은 '교육·육아 국가책임제' 공약을 내놓았다. OECD 평균 수준의 교육재정을 투자하고 유아에서 고등학교까지 공교육 비용을 국가가 책임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초등학교 전학년 돌봄 교실 확대 △만12세 이하 맞벌이부모 자녀 대상 찾아가는 '아이돌봄서비스' 확대 및 내실화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 아동 기준 전체 대비 40% 수준까지 확대 등과 △배우자 공동 출산 휴가 기간 유급 10일, 무급 4일로 확대 △육아휴직 급여 인상 등을 약속했다.

경제

문재인은 중소·벤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 신설하고 △창업투자회사 설립을 위한 납입 자본금을 완화 △연대보증제 폐지 등을 약속했다. 또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의 권리금 보호 대상을 확대하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제도 도입 △ 퇴거 보상제 도입 등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환경

문재인은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콘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을 복구 및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해양경찰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국가 재난관리능력을 강화하고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시키고 △재난대응의 지휘·보고체계를 단일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노후 원전 폐쇄 ·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등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가 되기 위한 로드맵 마련을 약속했다. 30년 이상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또는 친환경 연료로 전환해 임기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3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각주
 
 
참고
  •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가교출판, 2011년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출 더불어민주당 10대 대선 공약
  • <한겨레>, 피난민 아들 민주화 운동 인권 변호사…기득권에 맞서온 64년 삶, 2017년 5월 9일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4072.html
 
채은하 | 직업 전 프레시안 기자

프레시안에서 7년 동안 정치, 미디어, 환경 등의 분야를 취재함.<MBC, MB氏를 부탁해> 필자로 참여

 

출처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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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전문 필진으로 구성. 시의성 이슈에 대한 쉽고 정확한 지식정보를 전달합니다.

 

원문보기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X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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